[부처님오신날 특집]수행현장 / 서울 안국선원

계속된 지도와 점검 … 발견되는 생활의 즐거움

서울 가회동 안국선원(선원장 수불스님)에서 수행 중인 김성부(65.법명 은암)씨. 그는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베트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 부상을 입기도 했다. 쾌남아였다. 나쁘게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마초’였다. 전형적인 가부장의 등쌀에 아내는 내내 기가 질렸고 자녀들의 말대꾸는 곧 항명이었다. 4년 전만 해도 그랬다. 김씨는 어느 날 자신의 지인이 대부분 불자라는 ‘희한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재가불자 위한 ‘생활 속 禪’
수행으로 삶을 바꾼 불자들
매년 하안거 800여명 참가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방문한 안국선원. 희한한 사실은 희유한 인연이었음을 4년 동안 이곳에서 정진하면서 깨달았다. “우선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참선의 무한 고요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걸 느꼈지요.” 선원장 수불스님에게 받은 ‘나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고’라는 화두 속으로 파고들다 보니 ‘내가 부처님이다’라는 대답이 기어이 돌아왔다. “묵은 업장이 빠져나가면서 울기도 하고 몸부림도 쳤어요. 그러면서 부처님이 화를 내고 욕심을 부리면 되나. 세상에 노여워 말고, 내 주장 이전에 남의 주장을 듣자. 입을 닫고 귀를 열자. 반성이 생기더군요.” 〈불교문예〉에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김씨는 사보에 칼럼을 쓰며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젠 비로소 아내가 ‘부엌데기’에서 ‘도반’으로 보인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인사를 잊지 않는다. 삼배(三拜)다.

안국선원은 서울 시내 대표적인 재가자 참선도량이다. 1996년 개원해 올해로 10주년이 됐다. 매년 하안거에는 무려 800여명의 불자가 몰린다(병술년 하안거 동참인원 857명). 물론 안거 때에만 반짝하는 거품은 아니다. 안국선원을 찾은 지난 4월21일, 평일임에도 족히 600명이 넘는 재가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멀리 충북 음성이나 제천에서 발품을 팔아 찾아온 불자들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지니고 선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픔은 ‘내가 아닌 세상이 저질렀다’고 그들은 믿었다. 힘들었지만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상처받은 자기 자신을 똑똑히 응시하면서, 바른 대답을 얻었다.

오학준(법명 정각)씨는 3년 전에 장모의 소개로 안국선원에 들어왔다. 당시 그는 친구의 배신으로 사업자금을 몽땅 날리고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일상이 분노와 짜증의 연속이었어요. 그런 저 때문에 가족들도 무척 힘겨워했고. 그런데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한 생각이 저의 삶을 망쳐놓았지만, 치유하는 것도 결국 한 생각이더군요. 참선을 하면서 마음을 바꿔먹으니 사업도 번창하면서 저의 길이 보이더군요. 이젠 친구를 용서했습니다.” 생업 때문에 오씨는 오후반이나 저녁반에서 참선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에 2시간씩은 수행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안국선원은 새벽반(오전 4시30분∼6시30분), 오전반(오전 10시∼낮 12시), 오후반(오후 2∼4시), 저녁반(오후 7∼9시)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한달에 한번씩 불국사승가대학장 덕민스님의 강의로 〈금강경오가해〉를 공부하기도 한다. 선원장 수불스님은 매월 음력 3일 선원을 찾아 신도들의 수행정도를 일일이 점검한다. 지난 1989년 부산에 처음으로 안국선원을 연 스님은 서울을 비롯해 뉴욕에도 선원을 설립할 만큼 한반도 안팎에 ‘선풍’을 드날리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의 결집력이다. 지난해 부산 안국선원 개원 당시 무려 20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 개원법회를 도왔다. 절반 이상이 주말을 반납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신도들이다.

신도들은 하나같이 스님을 인생의 은인으로 여긴다. 성철스님 경봉스님 구산스님 등 선지식 아래서 공부했다는 윤송지(법명 향운선)씨는 “큰스님들께서 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셨지만 가르침이 어려워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는데 수불스님이 바르게 화두를 드는 법을 평이하게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 “복은 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눈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라, 부지런히 사찰을 옮겨 다니며 듣던 스님들의 감로법문이 이제는 무슨 뜻이었는지 확실히 알겠어요.” 윤씨는 이전엔 무관심하거나 꺼려했던 자신의 주변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내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는지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어요. 모두에게 참선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권하고 싶습니다.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수단은 세상에 많지만, 정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까요.”

윤씨와 같이 60대 이상의 노년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러나 나이가 무색하게 맑은 얼굴들이다. 수행의 힘일 것이다. 마음길을 끊으니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이지 싶다. 이들에게 마음의 눈을 틔운 주역은 바로 수불스님이다. 스님은 “산중에서도 쉽지 않은 간화선을 도시에서, 그것도 생활에서 불교와는 꽤 거리가 있는 재가자를 대상으로 시도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끊임없는 지도와 점검으로 간화선이 비밀스런 신기(神技)가 아닌 누구나 쉽게 떠먹을 수 있는 약수와 같다는 인식을 심었다.

스님은 “간화선은 현대사회의 대안이자 불교의 중요한 포교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의 주장은 신도들의 평안한 모습에서 곧바로 증명된다. 40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격언도 가슴에 와 닿았다. 자기를 비우는 방법으로 자기를 가꿔가는 안국선원 재가 ‘수좌’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많은 부처님들을 봤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안국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선원장 수불스님)은 지난 1989년 10월 부산에 금정포교당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재가자 간화선 수행도량을 표방한 안국선원은 현재 3000여명의 신도가 정진할 만큼 개원한 지 17년 만에 국내 최대규모의 도심포교당으로 성장했다. 1996년 서울 서초구를 거쳐 2001년 서울 가회동에 서울 안국선원을 개원했다.

부산서 문 열어 서울 포교
국내 최대 규모 도심수행원

아울러 지난해 3월엔 금정구 남산동에 대지 3610평, 연건평 1964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4층의 3개동으로 구성된 종합 불교회관 부산 안국선문화원을 준공 이전했다. 1천여 명의 신도들이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 정기 법회를 봉행하고 있으며, 재가자들의 일과를 고려해 매일 새벽, 오전, 오후 정진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특히 1년에 두 번 동안거와 하안거에 신도들이 가행정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웬만한 고찰 못지않은 수행환경을 갖추고 있다.

수불스님은 “간화선 중흥불사 원력에 대한 재가불자의 동참이 계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르침인 선의 범세계화를 위해 다함없는 정진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200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