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총림 방장 지유스님 을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

“10년을 정진하는데도 공부 진척 없다면 무슨 까닭인가?”

금정총림 범어사는 불기 2559년 을미년 동안거 결제 법회를 봉행했다.

오전10시30분 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린 결제 법회에는 방장 지유스님, 유나 인각스님, 주지 수불스님, 율학승가대학원장 수진스님, 승가대학장 용학스님을 비롯해 선원에 방부들인 수좌, 학인 및 신도 등 1000여 명이 보제루와 대웅전 앞마당을 채웠다.
결제법회는 방장지유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념촬영하는 순으로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금정총림 방장 지유스님 법문 요지

벌써 또 동안거 결제일이다. 하안거 동안거 두 번에 반 살림 까지, 1년이면 6번, 10년이면 60번을 맞이하는 그 때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몸과 마음을 수습해서 올바른 몸과 마음을 이루어보겠다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매진하여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인생 무상을 느끼고 무상하지 않는 불생불멸의 자리를 부처님께서 터득하신 것처럼 나도 그 뜻을 이어받고 부처님과 같이 되보겠다고 큰 마음 먹고 출가했던 몸이니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 무엇을 했는가? 사람은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드는 나쁜 쪽으로 달라지는데 우리 수행자는 수없이 결제하고 정진해서 좋은 쪽으로 달라졌는가?

몸은 마음의 그림자다. 마음이라는 주인이 시키는대로 몸은 움직인다.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은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맑으면 몸도 맑고 마음이 혼탁하면 몸도 혼탁해진다. 몸을 작동하는 주인공의 용심(用心)에 따라서 몸은 거짓 없이 사인을 보낸다. 몸과 달리 마음은 물체가 아니어서 볼 수 없지만 마음이 작용하는데 따라 몸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몸을 보면 그 사람 마음을 볼 수 있다. 몸이 혼탁하고 욕심을 부리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 공부가 됐는지 마음을 통해서 볼 수 없어도 몸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진리(眞理) 도(道) 불법(佛法)도 다 마음이라고 한다. 심외무불(心外無佛),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즉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며 심외무도(心外無道), 마음이 곧 도(道)요 진리(眞理)라고 하는데 마음은 무엇이냐?
마음을 깨닫고 닦자고 하는데 마음은 정작 깨닫고 안 깨닫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깨달았다 해서 마음이 되고 안 깨달았다고 해서 마음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선사들이 흔히 종소리 혹은 목탁소리 듣고 깨달았다하고 돌아가신 동산 대종사께서는 지나가다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 듣고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러면 종소리 듣기 전 자기가 없냐면 그것은 아니다. 종소리를 듣기 전이든 후든 나는 그대로 있다. 울어도 웃어도 괴로워도 즐거워도 자기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다. 울고 웃고 종소리 들리고 찬물 느끼고 이런 것은 잠시 있다 없어지는 것이고 나는 그대로 있다.

깨달은 사람만 물이 더운지 찬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못 깨달은 사람도 종소리 나면 종소리인줄 알고 찬물 마시면 물이 차가운 것을 안다. 깨닫고 아니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면 일반인들은 웃는다. 누구나 아는 그걸 배우려고 절에서 공부하느냐고 웃는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고 처음에 입을 다물었다. 거짓 없이 이것이 정법이라고 설명하면 일반인들이 믿지 않고 욕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성불했기에 방편으로 진실의 말은 나중에 하고 진실에 가까이 갈수 있도록 설명한 것이 부처님 설하신 경전이다.

내가 고요히 앉아있을 때 아무 생각 안 해도 밖에 종소리 울리고 찬바람이 불어 춥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놈’이 자기다. 이것을 찾으려고 지금까지 애를 쓰고 있다. 자기가 자기를 놔두고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종소리가 나는지 모르고 차 맛도 모르는가하면 온갖 잡념 망상 때문이다. 깨닫지 못한 것은 온갖 복잡한 생각 속에 듣고 있어서다. 그게 벽이다. 그걸 털어버리면 눈 앞의 물질이 그대로 보이고 종소리도 들어오고 찬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진심전력하며 모든 생각 사라지고 사라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이제는 깨치고 싶을 기력도 없어 아무 할 일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그 때 들려오는 종소리는 종소리 밖에 없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깨닫고 난 뒤 자기를 돌아볼 때 그동안 욕심도 감정도 많아서 이제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구나 결심하고 이후에는 깨달음을 중심을 두고 하나 하나 정리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수행이다. 그것은 하루 아침에 안된다. 눈을 뜨면 종소리인줄 알고 물소리인 줄 알고 물체인 줄 알지만 산란한 마음과 혼침은 여전하다. 그러면서 차 마실 때 차만 마시고 독경할 때는 독경에 매진하면서 혼침했던 마음이 점점 맑아져간다. 마음이 맑아지니 몸도 점점 맑아진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서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달라지게 된다. 이런 것을 느껴야 석달 공부 열심히 하고나면 지금의 어두운 것이 석달 뒤에 밝아지는 것이다.

박부영 기자 |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015년 1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