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철벽 정면 돌파하는 양기파 가풍

〈60〉15. 촉중(蜀中)의 축봉장로(鷲峰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래면목 바로 보이며 진퇴양난 몰아

본문: 근원이 깊지 않으면 흐름이 멀지 못하고 공부가 쌓이지 않으면 쓰임이 오묘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서하(西河)스님은 사자를 놀림에 종지와 격식을 초월하려 하였고, 양기스님은 ‘따가운 밤송이(栗棘蓬)’를 삼키고, 흐르는 물을 칼로 쟀습니다.

해설: 서하스님은 임제스님 아래 4세인 분양선소(947~10240)스님을 말하는데, 평소에 “분양의 문하에는 서하의 사자가 문턱에 앉아,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물어뜯어 죽인다. 어떤 방편을 써야 문안에 들어와서 분양의 사람됨을 보리오?”라고 말하곤 했다. 분양선소와 석상초원을 이은 양기방회(992~1049)스님의 가풍은 ‘금강권 율극봉’으로 유명하다. 이 두 가지 모두 분별망상이 은산철벽 앞에서 녹아내리는 장치를 말하는데, 특히 ‘임제종 양기파’는 이 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준엄한 가풍이 특징이다.

본문: 선불장(選佛場)에 들어와 향상 관문의 빗장을 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때로는 얼렸다 때로는 녹였다 하면서 견고한 무쇠 척추로 이 큰 임무를 걸머져야만 합니다.

해설: 학인이 불법(佛法)을 물어오면, 명안종사는 누구나 갖추고 있는 면목을 눈앞에서 바로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면 학인은 즉시 통하든지 아니면 꽉 막혀서, 마치 무쇠로 된 철퇴를 맞은 것과 같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근본당처는 알음알이로는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학인은 어떻게든 이것을 소화하기 위해 의심하고 의심하는 사이에 분별망상의 뿌리가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부처 뽑는 도량에 들어왔으면, 역경계와 순경계를 헤쳐 나가면서 이 알 수 없는 일을 해결할 때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본문: 자기 자신에게는 자세하고 진실하며 다른 사람한테는 치우침이 없어야 하니, 속세의 인연에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허물에 빠집니다.

해설: 중도실상을 여의지 않고 본분사를 분명하게 유지하는 것은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세밀하고 진실하며 매사에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본문: 오조봉의 노스님은 고개를 좌우로 끄덕였고, 백운산의 할아버지는 통째로 대추를 삼키게 해서 항상 경책하셨습니다.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을 밟듯 해야만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백천 걸음을 나아가고, 벼랑 위에서 억만 번이나 뛰게 됩니다. 이에 참다운 가죽 자루를 시험하여 부딪쳐도 부서지질 않는 줄 알 것입니다. 무릇 이는 부처님의 뚜렷한 본분의 씨앗이니, 삼갈 진저.

해설: 호남성 형양 출신의 백운수단(白雲守端, 1025~1072)스님은 임제종 양기파의 개조인 양기방회(992~1049)스님의 회상에서 참구하여 법을 이은 후, 백운산 해회선원에서 개당했다. 스승인 양기방회의 가풍인 ‘율극봉’을 계승하여, 학인으로 하여금 가시 많고 거친 대추(棘)를 통째로 삼켜서 넘기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놓이도록 지도하였다.

‘무쇠 철추’나 ‘거친 대추’ 같은 임제종 양기파의 가풍은 얼마 후 대혜종고스님에 의해서 공안에서 비롯된 화두를 들고 의심하게 하는 간화선으로 거듭 태어났다.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스님은 면주의 파서(巴西) 사람으로 백운수단 아래에서 공부했다.

어느 날 ‘한 승려가 남전에게 물었던 마니주’ 공안을 가지고 스승에게 물어보자, 백운수단이 큰 소리로 꾸짖으니 법연이 이에 크게 깨우치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마음에 계합된 바를 드러내 보였다. 이에 백운수단은 “율극봉 선(禪)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하고 인가했다.

오조법연 아래에서 당세에 삼불(三佛)로 이름 높았던 불감(佛鑑) 태평혜근(1059~1117), 불안(佛眼) 용문청원(1067~1120) 그리고 이 편지를 쓴 불과(佛果) 원오극근(1063~1125)이 나왔다. 비록 당처를 한 번 보았더라도 이곳에 집착하거나 머무르지 말고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살얼음을 밟듯이, 오래 익혀야 한다.

그래서 높은 장대 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허공을 밟고,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듯이 미혹은 물론 깨달음마저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걸림 없이 무애자재한 무의도인(無依道人)으로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