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더는 감당 못할 학인을 더 깊숙이 밀어넣어라

5. 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무명업식에서 건지려면 습기 철저하게 녹여야

눈밝은 선지식은 앞뒤 다 끊은 뒤 할·방 거둬

오조스님은 평생 고고하고 준엄하여 인가한 사람이 적었다. 무미건조하게 우뚝 서서 ‘이 하나(一著子)’만을 의지하며 항상 말하기를, “한 무더기 수미산을 의지하듯 하라” 하였는데, 어찌 허튼 농담과 우스개질로 사람을 속이는 데 떨어졌겠는가. 원오극근은 임제종 양기파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의 법을 이어받았다. 오조스님은 백운수단의 가르침을 받고, 호북성 황매현의 오조사에서 크게 교화를 펼쳤다. 처음으로 조주 ‘무(無)’자를 화두로 간택하여 참구토록 지도하여, 결국 손법상좌인 대혜종고가 간화선을 창시하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일착자’란 근본 마음자리를 말한다. 원오스님이 회상하는 스승은 항상 고고하고 준엄한 본분종사였기에, 학인을 제접할 때에 삼구(三句)로 설파하지 않고, 언제나 일구(一句) 법문으로 마음을 직지(直指)하였다. 이때 준비된 제자는 낙처(落處)에 바로 계합하였고, 그렇지 못하면 설상가상(雪上加霜) 하게 되어 의심에 의심을 더했던 것이다.

아무 맛없는 생철 맛을 학인들에게 처음부터 들이밀어 씹게 하여 반드시 통 밑이 쑥 빠진 듯한 데에 이르러야 그 많은 악지악견(惡知惡見)을 떨어주고, 가슴엔 실낱만한 것도 남겨두지 않아 투철하게 깨끗해야만 비로소 손을 써서 단련시키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주먹질과 발길질을 그만두었다.

고무도 씹기 힘든데, 생철을 던져주고 씹으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명안종사의 고구정녕한 자비다. 은산철벽에 막혀서 더 나아갈 수 없는 학인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도록 장치를 시설하여, 다시 한 번 그 속에 밀어 넣어주는 것이 본분작가가 제자를 죽였다가 살려내는 솜씨다. 수많은 생을 전전하며 쌓아온 무명업식으로부터 건져내려면, 아무리 미세한 분별망상일지라도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장치를 시설하여 무명 속의 습기를 철저히 녹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인은 마치 뜨거운 쇳물이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갇힌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가, 마침내 통 밑이 쑥 빠지면서 가슴에 걸려있던 온갖 미세망념과 알음알이가 터져나가는 것이다. 그때 당사자는 끝 간 데 없이 시원하여, 몸과 마음이 새의 깃털보다 더 가벼워진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때 악지악견의 탐진치 삼독(三毒)이 계정혜 삼학(三學)으로 바뀌지만, 결국 삼학이라 하는 것도 다 허망한 모습이어서 그런 것까지도 모조리 쓸어 없애야 된다. 비유하면, 진나라 때 장성을 쌓던 도력찬이라는 큰 기계도 성을 완성한 뒤에는 소용이 없어서 버렸던 것처럼, 변화가 일어난 뒤에는 공부과정에서의 모든 방편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병이 완쾌되면 약을 버려야 하고,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을 버려야 하는 것과 같다.

눈 밝은 선지식이라면 직접 손을 써서 담금질하여 통쾌하게 앞뒤를 탁 끊게 한 연후에, 비로소 방과 할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뒤에 금강왕 보검으로써 그가 과연 실천하고 감당할 수 있는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 일도 없이 깨끗하여 산은 산, 물은 물이게 되면 다시 모든 성인이 가두어도 머물지 않을 저쪽으로 옮겨가도록 하여, 예부터 조사들이 깨닫고 전수해왔던 정법안장(正法眼藏)에 계합하게 하였다. 그렇게 한바탕 해마치고 난 뒤에는, 과연 뒷감당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이리저리 찔러보았다. 이치를 미끼삼아 던져주어서 걸려들면 다시 후려쳐주고, 공부가 되었다고 하는 자리에 머물려고 하면 엎어버렸다. 그런 단련 과정에서 제자가 마침내 흔들림이 없게 되어, “인제 그만 하십시오. 들을 만큼 들었으면 이제 됐지, 뭘 또 자꾸 분별을 하십니까?” 할 정도가 되면, 집안에 효자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승이 봤을 때, “이놈만큼 우리 집안을 감당할 놈이 없겠구나. 나보다 빼어난 놈이 나의 대(代)에서 나왔구나” 하게 되면, 춤이라도 출 만큼 신바람이 날 것이다. 아무리 공부한 사람이 무심하다고 해도, 목석같이 메마른 것은 아니다. 도인도 달면 달고, 쓰면 쓰다. 여기서는 원오스님이 제자인 호구소융을 인정하고 투철한 종지종풍의 일단을 개시(開示)함으로써, 역대 조사들께서 이어오신 정법안장을 후대에 널리 전하도록 당부하는 뜻을 엿볼 수가 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