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의 탐구] 희양산 봉암사
禪宗九山에 울려 퍼지는 사자후 소리

구산선문(九山禪門)을 말할 때 지금까지는 아득한 옛 선승들의 향기를 쫓는 선종(禪宗)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구산선문들은 폐사되었거나 잊혀진 산문(山門)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천년의 세월을 어찌 하리. 그러나 살아있는 선종 구산이 우리를 반기는 곳이 있다. 그 곳이 바로 희양산 봉암사이다. 경북 가은에 위치하고 있는 봉암사는 80년대 초 조계종 특별선원이 되고부터 부처님 오신 날 단 하루만 일반 불자들에게 개방되고 그 외의 날들은 일체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오직 견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선승들의 닦음의 현장인 것이다.
오늘날 봉암사를 있게 한 선승으로는 단연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고 최근 입적한 서암선사를 든다. 그리고 그 뒤를 잇고 있는 봉암사 태고선원장인 정광스님 등이 오늘날 봉암사를 있게 한 주인공들이다.
그 닫혀 있는 봉암산문이 활짝 열린 것은 지난 2003년 4월 9일이었다. 서울 안국선원에서 모처럼 봉암사 참배가 있던 날이었다. 서울과 부산에서 버스 30여 대를 가득 채운 선재동자가 구법을 위해 봉암사를 찾던 날, 그 날따라 유난히도 날씨가 맑았다.
서울에서 8시에 출발한 버스는 인로왕 보살이 이끌듯 그 곳에 도착했다. 봉암산문이 활짝 열렸던 시간은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봉암산문에 내린 선남선녀들의 구도행렬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장관을 이루었고, 이윽고 모두들 법당에 모였다.
그 날은 마침 봉암사의 선원장인 정광선사의 설법이 있던 날이었다. 법당은 삽시간에 천여 명이 가득 메웠고, 정광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대중들은 청법가로 간절한 법을 청해 들었다. 죽비가 울리자 바람소리까지 숨죽였다.
이윽고 선사의 사자후 소리가 희양산을 메아리쳐 온다. 정광선사는 ‘마음과 마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禪)’이라고 첫 일성을 터트렸다. 이어서 정광선사는 봉암사 내력부터 말씀했다.

“봉암사는 신라시대 달마의 선법을 전한 아홉 산문 중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그 선맥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곳은 오직 봉암사밖에 없습니다.
봉암사는 해방 후 청담ㆍ성철스님 등에 의해 한국불교의 변화의 기틀을 이루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봉암사는 6.25 때 다시 퇴락되었지만, 봉암사에 흐르는 선풍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되살아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봉암사의 선풍이며, 지금 그 선풍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한 뒤 정광선사께서는 간화선 수행법을 일목요연하게 들려 준다.

“선을 참구하는 방법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리 조사가풍에 있어서는 간화선 수행법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여기에 모인 불자들은 모두 선을 닦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가지 공안을 붙들고 공부를 지어가는 그런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여러 불자님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화두를 제시하니, 그 화두의 핵심은 불생불멸입니다. 불생불멸하는 나의 진성이 남도 없고 멸함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한 뒤 정광선사는 법상에서 내려왔다. 밖을 내다보니 청산은 구름 한점 없는 듯 맑았다. 희양산문 돌멩이 하나하나까지도 선미(禪味)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선원이 된 이래 150여 명이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다. 백장청규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려는 봉암사의 선풍이 정광스님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법문이 끝난 뒤 선남선녀들은 봉암사 뒤 마애불 앞에 다가가 야단법석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수불스님은 마조스님의 ‘평상심의 도(道)’를 말씀했다.

“도를 닦을 것이 없으니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말라. 그것이 바로 ‘평상심의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그런 경계, 일상생활 그 자체가 도이다.”

문득 계곡을 바라보니 물결 사이로 햇빛이 눈부시게 빛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듯이 봉암사에 흐르는 선풍은 저 물결처럼 도도히 흘러간다.
그 세월은 천년을 뛰어넘어 한 줄기 우뚝 솟은 별빛처럼 빛난다.

[禪文化 2004년 5월]